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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ary International District 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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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타리, 3650지구 100년 이야기 (5)
지구관리자 | 24-10-25 | 조회수 23

한국로타리, 3650지구 100년 이야기 (5)

 

광복 후 클럽 재창립, 한국로타리연합회 결성

1961, 우리나라 최초의 375지구 출범하다

 

글. 지구사료위원장 신흥래

(서울새신라RC, 소설가)

 

지난 호에서는 1930년대 중반 경성로타리클럽에서 ‘S. Ryu’라는 영문 이름으로 활동한 회원이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였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이는 그동안 회원명이 영문 이니셜로만 전해오던 미완의 사료를 사상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향후 기회가 있다면, 국제로타리 본부의 소장 자료(경성로타리 회원명부나 회비 납부 관련 서류 등)를 확인함으로써 다시 한번 사실을 규명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1959, 10개 클럽의 한국로타리연합회 출범

 

1940년 12월 31일부로 해체되었던 경성로타리클럽은 해방 이후 1949년 3월 29일 서울로타리클럽(초대회장 최순주)으로 명칭을 바꾸고 재창립되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새로운 회원들로 구성된 신생클럽이 아니었다. 일제에 의해 클럽이 해체된 이후에도 회원들은 ‘경성 수요회’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는데, 이 모임이 재창립의 디딤돌이 된 것이었다. ‘경성 수요회’라는 명칭은 본래 경성로타리 주회가 수요일에 열렸던 데에 기인했다.

 

국제로타리의 재승인을 받을 당시 서울로타리클럽의 회원은 25명이었다.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서울로타리클럽 회원들의 약력을 간략히 살펴본다.

 

최순주(1904~1956) : 연희전문 및 뉴욕대 졸업. 일제강점기에 연희전문 교수를 지내다 흥업구락부(1925년 기독교 및 기호파 계열의 항일 비밀결사) 사건으로 사직했다. 광복 후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 총재를 지냈고 재무부장관과 옛 민의원 부의장을 역임했다.

 

김동성(1890~ ? ) :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수학. 1920년 동아일보 재직. 1948년 초대 공보처장과 민의원. 합동통신사 회장, 조선일보 발행인 등 지냄.

 

최두선(1894~1974) : 육당 최남선의 동생. 와세다대 철학과 졸업. 중앙고보 교장, 경성방직 사장,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1966, 1969년) 등 역임.

 

김도연(1894~1967) :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 게이오대학을 거쳐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과 워싱턴D.C 아메리칸대학(경제학박사) 졸업.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여한 독립운동가. 제헌국회의원 등 민의원과 6⸱7대 국회의원, 1948년 초대 재무부장관 지냄.

 

장리욱(1895~1983) :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을 이끌었다. 미국 아이오와주 더뷰크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교육학석사) 졸업. 더뷰크대 명예법학박사. 서울대 제3대 총장을 지냈고, 제4대 미국대사 역임.

 

이용설(1895~1993) : 세브란스의전, 시카고 노스웨스턴 의과대학 졸업. 광복 후 세브란스병원장, 대한나협회장, 대한병원협회장 등 역임.

 

허 정(1896~1988) : 제헌국회의원, 서울시장, 외무부장관 등. 1960년 과도정부 수반(지금의 대통령권한대행)을 지냈다. 3.1운동에 참여했고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백낙준(1896~1985) : 미 파크대(서양사)와 프린스턴신학교, 예일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연희전문 교수와 연세대 총장, 문교부장관 등 역임. 1960년 참의원에 당선, 초대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오정수(1899~1988) : 1927년 미국 MIT대학 졸업. 평양 숭실전문 교수 역임. 상공부장관, 한국무역협회 고문.

 

이태환(1904~1978) : 우리나라 독립지구인 375지구 승인과정에서 실무를 맡았고, 초대 총재를 지냄.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돼 미국으로 망명한 부친 (이용혁)을 따라 미국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퍼듀공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 경성전기(한국전력 전신)의 초대 사장과 초대 회장 등 역임.

 

이외에 함께 활동한 회원으로는 구자옥, 이원철, 전용순, 전신섭, 장계창 등이 있었다.

 

 

<375지구의 이태환 초대총재.(사진/경성전기60년 연혁사)>

 

6.25전쟁이 소강국면에 접어들던 1952년 부산로타리클럽(초대회장 양성봉, 당시 경남도지사)이 재건되었고, 1954년 대구로타리클럽(초대회장 신현돈, 경북도지사)이 재출범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에 창립됐던 클럽들 가운데 평양로타리클럽을 제외한 3개 클럽이 국제로타리의 재승인 과정을 거쳐 다시 창립됐다.

 

그리고 1955년 한양로타리클럽(초대회장 윤호병, 서울은행장)이 창립됐고, 1957년 인천로타리클럽(초대회장 최승만)과 남서울로타리클럽(초대회장 임일식), 대전로타리클럽(초대회장 문갑동), 전주로타리클럽(초대회장 김두헌) 등 4개 클럽이 창립되었다. 1958년에는 남부산로타리클럽(초대회장 박정헌), 이듬해엔 광주로타리클럽(초대회장 곽봉수)이 탄생했다.

 

그리하여 1959년 2월 23일, 서울 반도호텔에서 전국 10개 로타리클럽이 모여한국로타리연합회 창립총회를 열었고, 초대 연합회장에 김동성(서울로타리클럽, 연합통신사 회장), 부회장에 고병간(대구로타리클럽, 경북대 총장)을 선임했다.

 

 

1961, 3650지구 전신인 375지구 창립

 

한국로타리연합회는 1960년 2월 23일 반도호텔에서 제2회 정기총회를 열고 제2대 연합회장으로 김성진(한양로타리클럽), 부회장에 오정수(서울)와 양성봉(부산), 총무에 이태환(서울), 재무에 오선환(남서울) 등을 선출했다.

 

그해 10월 23일, 경북 합천 해인사에서 제3회 정기총회가 열렸고, 청주로타리클럽(초대회장 박철)이 창립되었다. 1961년 4월 15일, 제4회 임시총회가 부산 동래호텔에서 열렸다. 연합회로서 마지막 총회가 된 이날 임시총회에서는 우리나라가 7월 1일부로 국제로타리 375지구(District)로 승격, 독립함에 따라 초대총재에 이태환(서울)을 선임했다. 당시 국제로타리는 조셉 A. 아베이(Joseph A. Abey) 회장 재임기로서 이사회에서 375지구 설립안이 결의된 바 있었다. 이로써 이 땅에 로타리가 도입된 지 35년 만에 한국로타리가 단일지구로서 독립, 결속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었다.

 

375지구 창립 당시의 우리나라 12개 클럽의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 성명은 차례대로 회장, 부회장, 총무)

 

 

서울로타리클럽 (조동수, 문병기, 장철영)

한양로타리클럽 (김용완, 박두병, 이구종)

남서울로타리클럽 (오선환, 장용하, 현영원)

부산로타리클럽 (양성봉, 박선기, 김영소)

대구로타리클럽 (여상원, 서기원, 김종인)

전주로타리클럽 (명대혁, 이석동, 김영환)

대전로타리클럽 (문갑동, 박관수, 황익성)

인천로타리클럽 (최승만, - , 주원기)

남부산로타리클럽 (이윤응, 최견상, 김길빈)

광주로타리클럽 (곽봉수, - , 장종권)

청주로타리클럽 (박 철, - , 김영훈)

동대구로타리클럽 (서경진, 권두현, 서동두)

 

이 가운데 부산로타리클럽의 총무였던 김영소(춘해외과의원 원장, 울산 춘해보건대학 설립자) 회원은 1966-67년 375지구 총재를 지냈고, 1975년 5월 국제로타리 이사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로타리 이사에 선출돼 1975-76년과 1976-77년도 등 두 회기에 걸쳐 활동한 바 있다.

 

 

김성진 총재, 로타리 코리아전신인 지구월보창간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태환 초대총재는 서울로타리클럽의 재창립과 375지구 출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열정적인 로타리안이었다. 임기 시작과 함께 7월 1일 동대구로타리클럽이 창립돼 10월 19일 국제로타리의 승인을 받았다.

 

단일지구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지구대회가 1961년 12월 23~24일 양일간 서울은행집회소에서 서울지역 3개 클럽(서울, 한양, 남서울) 공동주관으로 하는 첫 번째 지구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자유중국(대만)의 곽극제 RI회장대리 부부가 참석했다.

 

초창기 지구대회가 자주 열렸던 서울은행집회소는 지금의 전국은행연합회와 비슷한 단체였다. 맨처음 사단법인 경성은행집회소가 1928년 설립되었고, 그 회관이 서울 북미창정(현 북창동)에 세워져 이곳서 대형 행사가 열리곤 했다. 이 단체의 명칭이 1948년 서울은행집회소로 변경되었고, 1975년 서울은행협회, 1984년 전국은행연합회로 확대 개편됐다. 은행연합회는 1996년 현재 서울 명동에 전국은행연합회관를 건립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375지구 제2대 총재에 선임된 김성진(1905~1991) 총재는 경성제대 의과대학를 나온 한국인 최초의 의학박사로서 광복 후 경성의대 외과학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장, 보건사회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면서 의사이자 교육자와 행정가, 정치인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김성진 총재는 한국로타리연합회 시절 제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어 한국로타리 발전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오늘날 전국 회원들이 구독하는 『로타리 코리아』와 『로타리서울(총재월신)』의 전신이 되는 『지구월보(地區月報)』가 이때 창간됐다.

 

 

 

2년차 지구대회, 그해 11월 라하리 RI회장 방한

 

1962년 10월 23~24일 서울은행집회소에서 제2차 지구대회가 열려 전국 로타리안과 클럽 임원들이 참석했다.

 

또, 그해 11월 13일에는 니티쉬 C. 라하리 국제로타리 회장이 3박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이에 앞서 조셉 A. 아베이 국제로타리 회장이 차기회장 자격으로 1961년 6월 12일 한국을 방문한 바 있었다. 라하리 RI회장은 인도 캘커타로타리 소속으로 아시아인으로서 첫 번째 국제로타리 회장에 선출된 인물이다. 11월 15일, 로타리 지도자들과 그 가족 154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호텔에서 환영만찬회를 열고 라하리 회장의 강연을 듣는 행사를 가졌다. 그는 “60년대의 미래를 위하여 로타리의 성화를 들고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형제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전 세계 100만 로타리안의 봉사정신으로 인류 화합에게 기여하자고 연설했다. [다음호에 계속]

<1964년, 375지구 제3차 지구대회가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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